Plastic 01: 플라스틱 유니버스(Plastic Universe)
Plastic
01플라스틱 유니버스(Plastic Universe)최정화 작가의 플라스틱 예술
세계와 연결되는 글로벌 플라스틱 아트무브먼트(Art Movement)플라스틱은 20세기
산업화의 산물이지만, 21세기에 이르러 그 의미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환경 위기의 핵심 소재이자 순환경제의 실험장, 그리고 동시대 예술가들에게는
시대의 언어가 되었다.한국의 설치미술가 최정화는 1990년대부터 플라스틱 일상용품을 대형 설치작품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해왔다.
광주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그리고
최근 로마 MAXXI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플라스틱을
단순한 환경적 기표가 아닌 삶과 정신의 매개물로 다루어 왔다.이 글에서는 최정화의 예술 세계를 출발점으로, 오늘날 전 세계에서 플라스틱이라는 소재를 통해 환경, 예술, 문화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작가들의 활동을 살펴본다.(1)
최정화, 작가 작업실, 2022공생의
매개체, 플라스틱인터뷰에서 최정화는 플라스틱과의 관계를 ‘공생’이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그에게
플라스틱은 문제적 물질이기 이전에, 삶의 현장에서 만난 예술의 원천이다. 작업의 출발점은 시장이었다. 그는 홍익대학교 재학 시절 통학길에서
시장 골목을 누비며 플라스틱 사물의 조형성에 눈을 떴다고 말한다.“플라스틱 물건들이 저에게 말을 걸었어요. 다른 재료들은 와닿지 않았고요. 전시를 앞두고 작품을 구상하는데
‘조화와 생화 중 어느 것이 일회용인가?하는 물음이 떠올랐어요.”(←2) 호놀룰루, 최정화, 베니스
비엔날레, 2017 | (→3) 연금술, 최정화, 페닌슐라 시카고(The
Peninsula Chicago), 2015이후 시장의 초록색 플라스틱 소쿠리가 그의 상징이 된다. 소쿠리 수천 개를 쌓아 올린 설치작품은 30년간 변주를 거듭하면서
전 세계 비엔날레를 순회했다.“시장 좌판에서 ‘번쩍’하는 초록색 소쿠리! 성스러운 현현이었죠. ‘가장 값싸고, 가장 반 환경적인 재료인 플라스틱으로 미학적 경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것이 과연 건강한 풍경이 될 수 있을까?’, ‘가장
속된 것이 가장 성스러운 것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저는 이런 고민 속에서 계속 탑을 쌓고 있습니다. 저의 성형술(Plastic surgery)은 연금술이며, 새로운 차원의 치유 방식입니다.”(4)
만다라오브플라워(Mandala of Flowers), 최정화, 호주현대미술관(OAGOMA), 2015그에게 플라스틱은 환경 담론 이전에 ‘물질의 존중’에 관한 것이다. 난지도
쓰레기 섬을 여러 번 방문하고, 전 세계 폐기물 처리장을 다니며 그가 발견한 것은 ‘숭고’였다.“난지도를 여러 번 방문하고 쓰레기 섬에서 폐기물 더미를
보며 ‘숭고의 미’를 느꼈습니다. 쓰레기와 자연 그리고 인간 사이의 구분 없는 미학적 경관을 보여주고 싶었죠.”“저는 미술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움을 위해 태어난 아름다움이
아닌 생활 속에 잠재한 건강한 아름다움, 깊은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이러한 사유는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의 순환성, 즉 만들어지고, 버려지고, 부서지고, 보이지 않게 되었다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과정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플라스틱이라는 재료에 관해서만큼은 시간이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고 통시적으로, 공시적으로 흐릅니다.”“생산(production)과
생성(engendering) 사이의 모순을 이야기하고 싶었고요. 생산은
인간 중심적 메커니즘, 생산 시스템에 초점을 둔 유물론이라면 인간은
(비)인간, 생물, 무생물 중에서 하나의 역할을 맡았을 뿐 매개자, 행위자, 활성체 모두가 얽히고설켜 있다는 거죠. 저는 예술은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거라고 봐요. 그래서 생산된 물건을 가지고 생성을 시키죠.”(5)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는 쌓기 작업 ‘꽃 숲’, 최정화, 2015결국 최정화에게 플라스틱은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허무는 ‘공생’의 매개체다. 그는 자신을 ‘플라스틱
인간’이라 부르는 세간의 별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생물학
개념인 ‘통생명체(Holobiont)’를 빌려 자신의 철학을
설명한다.“사람들이 저 더러 ‘플라스틱
인간’이라고 부르는데, 수십여 년간 플라스틱과 특별한 공생
관계를 맺어오긴 했죠. 통생명체라는 뜻의 ‘Holobiont’는
하나의 생명체에 대해 규정할 때 공생하는 다른 생명체를 함께 묶어서 생각하는 생물학 개념을 말해요. 생물과
무생물,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꾀하고 생동하는 물질을 느끼자는 것입니다.”“플라스틱은 지구 생태계에 등장한 새로운 정복자이고 인간은
자연을, 환경을 보호할 능력이 없습니다. 발효 음식처럼 서로
스미고 우려나고 퍼지면서 아름다움을 발하길 바랍니다. 생물, 무생물, 인간, 비인간의 구분 없이 서로 돌보고 따뜻하게 껴안으면 더 가깝게
살아가고 싶어요.”“플라스틱은 인피니티, 뫼비우스처럼
달갑지 않은 되돌아옴의 순환성으로 우리에게 남이 없다면 나도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연금술적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들 — Everlasting Plastics최정화가 시장의 소쿠리에서 ‘성스러움의 현현’을 보았다면, 대서양
건너에서는 같은 물질의 다른 얼굴을 응시하는 전시가 열렸다. 2023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미국관으로
초연된 <Everlasting Plastics>는 이후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2024년), 클리블랜드 SPACES(2025~2026년)로 순회하며 플라스틱의 물질성과 그것이 초래한 생태적, 경제적, 건축적 결과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Tizziana
Baldenebro는 전시의 핵심 질문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러나 동시에, 플라스틱과 함께 어떻게 살
수 있을까?(How can we live without plastics? But, also how can we
live with plastics?)” 이 질문은 최정화가 수십 년간 던져온 질문과 닮아 있다.다섯 명의 미국 기반 작가 — Xavi L. Aguirre, Simon Anton, Ang Li, Norman Teague, Lauren Yeager
— 가 참여한 이 전시는 가소성(Plasticity)이라는 개념을 은유와 물질, 두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탐구한다. 피츠버그 순회전은 특히 인근의
석유화학 제조업 역사와 셰일 가스전이라는 지역적 맥락 위에서, 플라스틱이 경관과 공동체를 어떻게 형성하고
또 어떻게 침식해왔는지 묻고 있다.Ang Lid의 <Externalities>는
미국 전역의 재활용 네트워크에서 수거한 발포 폴리스티렌(EPS) 스크랩으로 높이 10미터의 벽을 쌓아 올린 작업이다. 미국 매립지의 약 30%를 차지하면서도 일상에서 거의 인식되지 않는 이 물질을, 관객이
물리적으로 마주하도록 만든다. 작가는 클리블랜드 거리에서 수거한 쿨러 박스, 고양이 모래 통, 플라스틱 용기 등을 쌓아 올려 기념비적 토템을
만든다. 그리고 그 물건들이 천연자원보다, 혹은 그것을 소비하는
인간의 기억보다 오래 남으리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환기하게 만든다.(6)
Externalities, Ang Li, <Everlasting Plastics>, Carnegie Museum of Art,
2024(7)
Longevity, Lauren Yeager, <Everlasting Plastics>, Carnegie Museum of Art,
2024(8)
Longevity, Lauren Yeager, <Everlasting Plastics>, Carnegie Museum of Art,
2024Lauren Yeager와 최정화 작가가 모두 토템에 기반한 쌓기라는 방법론을
사용한다는 공통점과는 달리, 소재를 대하는 태도에서 서로 갈라진다. 최정화의
플라스틱은 풍화의 질감에서 공생을 읽어내고 생물-무생물의 경계를 허무는 매개체이자 순환의 도구라면, 반면 <Everlasting Plastics>의 시선은
보다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다. 큐레이터 Baldenebro는
“우리의 문제는 소비에 있다 —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자원은
유한하다(Our issue is with consumption — all of the resources we
consume are finite)”라고 선언한다. 그중 Norman Teague의 작업은 폐기물 투기라는 구조적 폭력을 직접 겨냥하며,
Ang Li의 EPS 벽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의도적으로 유발한다. 여기서 플라스틱은 공생의 대상이 아니라, 직시해야 할 시스템의 증거물이다.(9)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Julien Creuzet, 2024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들 — 베니스 비엔날레<Everlasting
Plastics>가 석유화학
산업의 지형도를 그렸다면, 같은 베니스에서 열린 제60회
국제미술관(2024년)에서는 플라스틱과 산업 폐기물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이 전시에서 플라스틱과 산업 폐기물은 단순히 환경적 소재가 아니라 식민의
역사와 전 지구적 자본 흐름이 담긴 물질적 증거로 기능한다. 그 중 Julien
Creuzet이 참여한 프랑스관과 에티오피아 출신 Elias Sime의 작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10)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Julien Creuzet, 2024Julien Creuzet,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해류가 밀어 올린 파편들Creuzet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것은 재료의 출처다. 그의 작품은 해변에 밀려온 잔해물, 즉 닳은 밧줄, 조각난 플라스틱, 해진 그물 등 재료에서 출발한다. 이 재료들은 환경 오염의 증거물인 동시에, 대서양을 통해 펼쳐진
노예무역과 카리브해 식민 역사의 물질적 잔여물이기도 하다. 플라스틱 잔해와 식민의 기억, 그리고 해양 생태와 이주민의 서사가 담긴 그의 작업은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적 증거를 통해 하나로 엉킨다.(11)
Tightrope: Dichotomy 6, Elias Sime, 2023-2024Elias Sime,
<Dichotomy>: 전자
폐기물의 직조에티오피아 출신인 Sime은
전선, 마더보드, 키보드,
마이크로칩 등 전자 폐기물을 주재료로 대형 벽면 작업을 만드는 작가다. 그의 재료는 아프리카
최대의 노천 시장인 아디스아바바의 메르카토(Mercato)에서 온다.
이곳에는 전 세계에서 밀려온 전자기기 폐기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북반구에서 생산되고, 사용되고, 버려진 기기들이 남반구의 시장으로 흘러 들어 다시 분해되고, 분류되고, 재판매되는 전 지구적 폐기물 순환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다.(12)
Tightrope: Dichotomy 6, Elias Sime, 2023-2024Sime은 이 폐기물을 유화 물감이나 아크릴, 혹은 점토처럼 다룬다. 전선의 피복을 벗기고, 색상별로 분류하고, 나무 패널 위에 접착하거나 못으로 고정하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베니스 전시의 핵심인 ‘Tightrope’
시리즈에서 그는 에티오피아 전통 직조 기법을 빌려 산업 폐기물을 엮는다. 이 행위에서, 엮기는 흩어진 것을 하나로 모으는 은유이자, 인간과 기술과 자연이
분리 불가능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방법론이 된다.최정화 작가의 작품과
<Everlasting Plastics> 전시,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의 출품
작품들까지 모두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환경, 예술, 문화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플라스틱과 또한 산업 폐기물이라는 소재가 동시대 예술에서 얼마나 다층적인 의미를
담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경고를 넘어, 물질과
정신, 공생과 착취, 순환과 단절, 아름다움과 폭력 사이의 긴장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매체로서 플라스틱은 존재한다. 최정화가 말한 “눈이 부시게 하찮은 존재”는 바로 그 다층성 때문에 전 세계 작가들의 손을 거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1-5) 매터매거진(Matter Magazine)
©맹민화 | 일부 작가 제공(6-8) Carnegie
Museum of Art (www.carnegiesart.org)(9-10) Julien
Creuzet (www.juliencreuzet.com)(11-12) Grimm
Gallery (www.grimm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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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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