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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stic 05: 플라스틱스피어(Plastisphere)

2026-08-26 156

Plastic 05

플라스틱스피어(Plastisphere) 

장한나의 뉴락프로젝트와 2026년 플라스틱스피어 과학

 

바닷가에 수십 년 방치된 스티로폼은 풍화작용을 거치며 돌멩이와 구분되지 않는 형태로 변형되고, 그 표면에는 수백 종의 미생물이 새로운 생태계를 이룬다. 과학계는 이 현상을 플라스틱스피어(Plastisphere)’​파이로플라스틱(Pyroplastic)’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술가는 같은 물질에 뉴락(New Rock)’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이 다를 뿐, 그 대상은 같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작가 장한나는 인천아트플랫폼과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에 이어 자신의 뉴락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해변에서 주워 온 풍화된 플라스틱 조각을 자연물처럼 받침대에 올려두고 관찰하고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26, 장한나의 뉴락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전시로 이어졌고, 과학계는 플라스틱이 광물과 결합해 새로운 암석이 되고 미생물이 그 위에 고유한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사실을 정량 데이터로 입증하고 있다. 예술이 먼저 발견한 물질을, 과학이 분류하고 분석하고 있는 형국이다. 

 

(1) 장한나 작가, 작업실, 2022

 

후쿠시마에서 해변까지, 물질을 보는 눈

장한나의 환경 인식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출발한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는 사고 직후 내리는 봄비를 맞는 것이 두렵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이 신체적 감각은 이후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태도가 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환경을 변형시키는 힘에 대한 예민함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결국 인재예요. 다른 생명체를 모두 위협한 끝에 사람에게 온 거죠.”


(2) 뉴락(New Rock), 장한나, 2022

 

그는 이어 방사능에 노출된 식물을 세밀화로 기록한 이상한 식물학연작을 거쳐, 1년간 재활용 쓰레기 수거 과정을 추적한 마이크로플라스틱 카나페를 발표했다. 정다운 보틀팩토리 대표, 송수영 작가와 함께 서울 마포구의 쓰레기차를 따라 파주 선별장까지 직접 동행한 프로젝트였다. 그곳에서 장한나는 환경부의 공식 재활용률과 실제 재활용률 사이에 놓인 균열을 목격한다.

 

환경부는 선별장으로 가는 것의 50%가 재활용된다고 추정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분리수거한 양의 5% 정도만 재활용된다고 해요. 소각하면 탄소 배출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크고요. 그러다 보니 결국 매립으로 가는 거죠.”

 

분리배출의 성실함으로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에 닿은 뒤, 장한나는 분리되지 못한 플라스틱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 추적의 끝에서 만난 것이 뉴락이었다.

 

뉴락의 탄생 플라스틱이 돌이 될 때

장한나는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울산의 개발되지 않은 해변을 걷다가, 풍화작용을 거쳐 돌과 형태가 똑같아진 스티로폼을 발견했다. 이후 제주도 재주도좋아레지던시를 통해 해변 쓰레기 수집을 본격화했다. 그가 설명하는 뉴락은 다음과 같다.

 

뉴락(New Rock)은 새로운 돌이라는 뜻이에요. 석유화학 계열 플라스틱이 자연에 흘러 들어가 오랫동안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자연인지 인공인지 구분이 안 되는 그 중간 지점에 있는 것을 뉴락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3, 4) 뉴락(New Rock), 장한나, 2022


주목할 것은 과학계에서도 같은 방식의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버려진 플라스틱에 해양 생물이 적응해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된 것을 플라스틱스피어(Plastisphere), 플라스틱이 자갈처럼 변하는 현상을 파이로플라스틱(Pyroplastics)이라고 부른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두 개의 용어가 작가의 인터뷰가 단순히 환경운동 서사가 아니라 물질과학에 맞닿은 리서치 기반 작업임을 보여준다.

 

장한나의 분류 체계는 재료에 따라 스티로폼락, 스펀지락, 나일론 로프락으로 나뉘고, 원래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는 변성 상태의 것은 변성암(Metamorphic Rock)에서 이름을 따 뉴모픽락(Newmorphic Rock)이라 불린다. 암석학을 연구하는 분과 대화하며 분류를 더 세분화하게 됐다는 작가의 말은, 이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지질학적 상상력 위에 놓여 있었음을 시사한다.

 

플라스틱은 지구상에 등장한 지 100년 정도 되었을 뿐이고, 풍화작용을 받아 마모되면서 자연물처럼 변형되는 주기도 훨씬 짧아요. 돌처럼 강도가 높은 물질이라면 짧은 시간 안에 이런 형태가 나오지 못할 거예요.”


 

(5) 뉴락(New Rock) 작업 중인 장한나, 2022

과학이 붙인 이름들, 플라스틱스피어

플라스틱스피어라는 용어는 2013Erik Zettler, Tracy Mincer, Linda Amaral-Zettler가 학술지 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발표한 논문 ‘Life in the Plastisphere: Microbial Communities on Plastic Marine Debris’에서 명명됐다. 해양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조각 위에 형성되는 미생물 군집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개념은 지난 10여 년간 담수, 심해, 극지방까지 확장됐다.

 

플라스틱 표면의 생물막(Biofilm)은 주변 해수보다 *섀넌 지수가 높고, 박테리아, 균류 등으로 90% 이상 구성되어 있다. 또한 플라스틱 분해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되면서, 생산자와 종속영양생물, 공생자, 포식자가 모두 참여하는 하나의 축소된 생태계가 플라스틱 조각 위에 형상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26년 최신 연구에서는 특정 미생물들이 서로 협력 컨소시엄을 이뤄 플라스틱을 분해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플라스틱이 미생물에게는 새로운 진화의 선택 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 연안의 마이크로플라스틱 미생물 군집을 분석한 Frontiers in Marine Science 논문은 국내 해역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관찰됨을 보여줬다.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와 인류세의 암석

파이로플라스틱이 풍화로 돌처럼 된 플라스틱이라면, 플로스티글로머레이트(Plastiglomerate)녹는 플라스틱과 자연 퇴적물이 결합한 새로운 암석이다. 이 용어는 미술가 Kelly Jazvac가 지질학자, 해양학자와 함께 공동 발표한 ‘An anthropogenic marker horizon in the future rock record’에서 처음 제안됐다. 하와이 카밀로 해변에서 수집된 약 200개의 표본이 그 출발점이었다. 이후 이 암석은 스페인 대서양 해변, 벤쿠버 태평양 해변, 인도 동쪽 해안과 안다만 제도, 페루 연안에서 잇따라 확인됐다.

 

장한나가 2022년 인터뷰에서 언급한 플라스틱스피어와 파이로플라스틱, 그리고 뉴락이라는 명명 자체가 과학계의 최근 7년간의 논의와 거의 같은 궤도에 놓여 있다. 예술가가 해변에서 먼저 감각적으로 포착한 물질이 학술 논문과 지구화학 데이터로 확인되는 구조이다. 

 


(6, 7) 뉴락(New Rock) 작업 중 일부, 2022


2023-2025, 미술관으로 간 뉴락

2022년 인터뷰 당시 장한나의 프로젝트는 인천아트플랫폼과 부산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소개됐다. 이후 3년간 뉴락은 국내 주요 미술기관의 전시 지형 안으로 본격 편입됐다. 2023 5월에는 김해클레이아트미술관에서 개인전 <장한나: 뉴락 New Rock>이 열렸다. 한국 해안에서 10여 년간 수집한 약 300여 점의 뉴락 표본이 석유와 플라스틱, 돌연변이, 에너지, 풍화, 지질에 관한 참고 도서관과 함께 전시됐다. 스티로폼락, 스펀지락, 나일론 로프락, 지퍼락, 플라스틱 병락 등으로 분류된 표본들은 자연사 박물관의 전시대를 연상시키는 구성으로 제시됐다.

 

2025년에 접어들면 전시 규모가 한 단계 더 커진다. 2월부터 6월까지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의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에 참여한 뉴락 연구실(New Rock Research Lab)’을 선보였다. 관객이 관찰과 조사에 참여하며 사유하는 연구 공간 형식으로 제안된 전시는 기술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과 기술-자연의 공존을 체험할 수 있었다.

(8) 뉴락 연구실(New Rock Research Lab), 장한나, 백남준아트센터, 2022


이와 더불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전국 해안에서 수집한 약 500여 점의 뉴락을 모아 빅뱅을 연상시키는 설치 작업 ‘Being’ 로키산맥의 빙하, 산불 이후의 풍경, 반도체 공장의 온배수 방류구를 담은 신작 영상 ‘New Nature; Being’을 함께 내놓았다. 뉴락이 기록하는 느린 지질학적 변환 옆에, 반도체 생산과 기후위기가 만드는 급격한 지표 변형이 병치된 구성이었다.

 

인터뷰 이후, 계목하지 않는 전달

 4년 전 인터뷰에서 장한나는 자신의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했다.

 

계몽하는 방식으로 환경 문제를 알리기보다 그저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작가로서의 메시지보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 사이에서 어떤 간극을 발견하고 충격이나 경각심이 생긴다면 좋겠어요.”

 

이 태도는 다른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경일일보가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현장에서 진행한 인터뷰와 뉴스펭귄과 핸드메이커의 특별 인터뷰에서 작가는 반복적으로 수집, 연구, 소통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작업을 요약한다. 위기 담론으로 관객을 설득하지 않고, 사실을 차분히 정리하고 제시하는 방식이 장한나 작가가 취하는 태도이다.

 

특히 2025년 백남준아트센터와 국립현대미술관의 관람객 참여형 뉴락 연구실형식에서는 그 태도가 제도화되어 견고해진다. 작가가 감상자에게 해석을 주는 대신, 감상자가 표본을 관찰하고 분류하고 질문하는 구조이다. 전시 공간이 작가의 서재이자 실험실로 변환되는 것이다.

(9) 수석비닐 봉지 & 수석 꽃모양 스티로폼락, 장한나, 2020



과학과 예술에서 플라스틱 소재의 변화
2013년에 플라스틱스피어가 명명되었고, 2014년에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가 제안된 이래 약 12년이 지난 2026, 플라스틱은 과학과 예술적인 측면에서 다층적 의미를 획득했다. 지질학적 지표적인 측면에서는 플라스틱은 이미 퇴적층에 기록되고 있는 인공광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생물 생태계의 기질로서 플라스틱 표면은 주변 해수보다 더 다양한 미생물 군집을 지탱하는 능동적 생물학적 환경이 되었다. 예술의 층위에서 플라스틱 소재의 의미도 함께 이동했다. 2010년대까지의 지배적 서사는 플라스틱을 과잉 소비와 오염의 상징으로 다루는 경고의 미학이었다. 2022년 시점의 장한나는 이미 이 서사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있었다. 그는 플라스틱을 오염원이 아니라 자연과 인공의 경계에 있는 새로운 물질로 명명했고, 계몽이 아닌 관찰과 분류의 언어로 작업을 구성했다. 플라스틱을 그 자체로 비난하거나 찬양하지 않고, 기술-자연의 경계면에서 일어나는 변형의 한 사례로 위치시키는 것이다.

(10, 11) 장한나 작가의 작업실 일부, 2022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플라스틱이라는 가벼움이 다르게 다가오는순간이다. 공장에서 1mm, 1g 오차 없이 대량생산된 균질한 물질이 해변에서 수십 년을 보낸 뒤 자연물처럼 변해 가고, 그 위에 미생물이 고유한 생태계를 이루며, 퇴적층에는 인간 활동의 지문이 남는다. 한 작가가 해변에서 길어 올린 표본들이 암석학자와 미생물학자의 논문 옆에 나란히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이 2026년 현재 플라스틱이라는 소재가 놓인 자리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2022년에 지질학과 생태계의 일부가 된플라스틱을 주목했던 시점은 결코 이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점은 10년에 걸친 과학적 명명이 예술적 감각과 조우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2026년 오늘, 뉴락은 더 아시아 한 작가의 프로젝트 이름이 아니라, 플라스틱이라는 소재를 오염원이 아닌 지질-생물학적 실체로 다시 읽어내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기능한다.

 

*섀넌 지수(Shannon’s Diversity Index): 생태학에서 특정 지역의 종 다양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종의 수와 각 종의 개체 수 분포를 모두 고려하여 측정된다.

이미지 출처:

(1-7, 9-11) 매터매거진(Matter Magazine) ©맹민화 | 일부 작가 제공

(8) 백남준아트센터 (https://njp.ggc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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