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M] 한계가 없는 재료, 알루미늄
2023-12-15 592
한계가 없는 재료, 알루미늄
우리는 알루미늄으로 거의 모든 것을 만든다. 특히 현대건축에서 이 금속은 빠질 수 없는 재료다.고층 커튼월 건물에서는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 입면을 가능하게 하는 일등 공신으로, 비정형 건축에서는 자유로운 형태를 구현하는 외장재로, 주택에서는 까다로운 에너지 단열 기준을 만족시키는 똑똑한 창호의 모습으로 다채롭게 변신한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알루미늄의 위험성은 이것을 가지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그 한계가 없다는 것”이라 말했을 정도.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형태의 알루미늄을 사용한다. 가깝게는 음료수 캔부터 컴퓨터 하드웨어, 크게는 조선업, 대형 건물의 외장재까지. 때로는 주인공으로, 때로는 조연으로 다양한 크기와 역할을 넘나들며 변신하는 알루미늄의 면면을 살핀다.
지구상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금속
알루미늄은 지구를 이루는 8대 원소 중 하나로 지각 무게의 약 8.3%를 차지한다. 산소와 규소 다음으로 흔한 광물이지만, 1866년 전기분해 제조법이 발명된 이후에 공업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며 비교적 최근에 산업화된 금속재료다. 가벼우면서도 기계적 강도가 우수해 현대 경금속 시대를 활짝 연 주역이다. 알루미늄은 다른 금속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녹는점이 낮다. 길게 늘어나는 연성, 얇게 펴지는 전성이 우수해 얇은 박이나 가는 선 등 다양한 형태로 성형하기가 쉽다. 주조, 단조를 비롯해 재단, 타공 등 금속을 가공하는 대부분의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0.007mm 두께까지 압연이 가능해 은박지처럼 얇은 박을 만들 수 있고, 특히 철보다 뛰어난 연성으로 압출성형에 최적의 물성을 갖췄다.
덕분에 기존의 금속재료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곡면 가공이나 기하학적인 형태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최신의 건축 외장재로 주목받는다. 부식으로 인해 외장재로 사용하기 어려운 다른 금속과는 달리, 알루미늄은 대기 중에서 산소와 만나 산화피막을 만들어 내 부식되지 않는 내식성이 뛰어나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독특한 은백색 광택은 바로 산화피막의 모습이다. 또한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표면을 강화하는 양극산화(아노다이징)이 가능해 고유한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 다채로운 색상으로 건축 외관의 심미성을 높인다.
현대 도시의 파사드 재료
1902년,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오토 바그너는 당시 많이 쓰이지 않던 알루미늄으로 강판을 도금하고 유리와 함께 입면을 마감해 현대적이고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1906년 완공한 비엔나의 오스트리아 우체국저축은행에서는 문손잡이, 조명, 환기를 위한 기둥 등 장식과 설비에 알루미늄을 사용했다. 1950년대 유선형 디자인이 등장하면서부터는 건축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1951년,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미국 시카고의 레이크쇼어 아파트, 1958년 뉴욕의 시그램 빌딩을 차례로 완성하며 고층 건물의 구조와 완전히 분리된 커튼월 입면을 선보였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2004년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아그바 타워는 32층 규모의 고층 빌딩 전면을 알루미늄 패널로 마감했다. 입면에 40가지 이상의 색상을 입혔고, 색이 주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 위를 유리로 덮었다. 덕분에 보는 각도, 시간대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색이 달라지는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아그바 타워가 인상적인 형태와 현대적인 재료로 바르셀로나의 도시경관을 바꾸었다면, 서울의 모습을 바꾼 대표적인 알루미늄 건축물은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다. 옛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지형을 옮겨 낸 형태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다. 직선이 없는 유연한 공간을 감싸기 위해 4만 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을 제각기 다른 크기와 곡률로 제작해 UFO와 같은 유선형의 디자인을 완성했다.
알루미늄은 철보다 뛰어난 연성으로 압출 성형에 최적의 물성을 갖췄다. 압출은 치약을 짜면 구멍 모양대로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인데, 열을 가해 말랑말랑해진 알루미늄을 틀에 밀어 넣고 뽑아내는 방식으로 창틀, 커튼월 등의 하드웨어를 생산한다. 이렇듯 독보적인 가공성은 기존의 건축자재로는 불가능했던 곡면, 구부리거나 휘는 형태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내며 독특한 공간감을 구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효용성과 경량성을 갖춘 알루미늄 커튼월은 도심에 고층 건물이 늘어남에 따라 외피를 이루는 재료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규격화된 조립 방식을 사용해 시공이 간편하고 경제적이라는 장점 덕분이다. 이렇듯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특성으로 유리와 함께 현대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알루미늄의 다양한 활용
알루미늄은 가벼우면서도 강하다. 또한 밀도는 철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강도는 탄소강과 비슷하다. 이 장점을 활용해 경량화가 중요한 운송 분야에서 활발하게 쓰인다. 특히 전체 알루미늄 생산량 가운데 약 28% 정도가 자동차 산업에 사용된다. 무게를 더 가볍게 하고 싶을 때에는 마그네슘과 리튬 등을 합금하고, 반대로 무게를 더 무겁게 하고 싶을 때는 크롬, 구리, 철, 망간, 티타늄, 아연 등을 더한다. ‘알루미늄 합금의 꽃’으로 불리는 두랄루민은 구리와 마그네슘, 망간을 더한 합금으로, 알루미늄보다 경도와 강도가 훨씬 높아 항공기 재료로 많이 쓰인다.
열과 빛, 전자파를 비롯한 대부분의 에너지를 잘 반사하고, 특히 열선인 적외선에 대한 반사율이 높다. 반사도는 알루미늄의 순도가 높을수록, 표면을 매끈하게 연마할수록 높아진다. 빛을 잘 반사하면서 무게가 가벼워 조명에도 많이 쓰인다. 또 반사율이 높은 만큼 표면에서 에너지를 적게 흡수한다. 이 특성을 살려 방열판, 난방기의 반사판, 우주복 등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알루미늄은 열과 전기전도도가 매우 높다.
열전도율은 철의 3배, 스테인리스 스틸의 12배에 달할 정도로 높아 전열 제품이나 조리 기구의 재료로 쓰인다. 양은 냄비에 끓인 라면이 훨씬 맛있는 이유는 주재료인 알루미늄의 열전도율이 높기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 더 빠르게 조리할 수 있어서다. 전기전도율은 구리의 60% 정도지만 밀도가 30% 정도로 훨씬 가볍기 때문에 절반의 무게로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비용도 저렴하기에 공중에 매다는 고압 전선은 대부분 알루미늄으로 만든다.
* 원문 및 작성 : 감매거진 (garm.8appl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