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M] 순수한 재료의 아름다움
2023-11-21 1002
순수한 재료의 아름다움
화학기술의
발달로 플라스틱이나 하이브리드 합성재료가 등장해 21세기 건축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알루미늄과 아연, 마그네슘 같은 비철 금속 재료들은 이제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 금속은 일반적으로 전성이 있어 얇게 펼 수 있고 다양한 형태로 가공이 가능해 특히 건축재료로 유용하다. 그중에서도 철은 가장 많이 쓰이는 금속이다. 철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재료 중 하나이면서 건축가의 디자인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정직한 재료이기도 하다.
철이 본격적인
건축재료로 사용된 역사는 의외로 짧다. 건축재료로서의 철은 19세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19세기 들어서야 코크스를 넣은 고로에서 정련하는 기술과 가공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로소 대량생산됐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주로 주철과 제련철을 부분적으로 사용했지만, 극히 일부로 제한됐다. 1868년 철을 고온으로 녹이는 노공법이 개발되고 산업화
시대 이후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철강은 그 어떤 것보다 경제적이고 강인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재료가 됐다. 현대에
들어서며 철은 모든 재료를 베어버릴 듯한 날카로움과 그 어떤 재료보다 더 단단한 강인함으로 아찔한 고층 건물과 거대한 공항, 경기장의 구조재가 되기도 하고, 다양한 도금과 도장의 옷을 입고 외장재로도
많이 사용된다. 이렇게 20세기의 근현대 건축은 철의 사용과 함께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강의
분류
철iron과 강steel을 합쳐 철강(鐵鋼)이라고 한다. 철강은 통상적으로 제품에 포함된 원소함유량 등을 기초로 하여 강종(鋼種)으로 구분하거나 제품의 형상(形相)에 따라 분류한다. 건축용은 사용 목적에 적합한 모양으로 가공하거나 변형한 제품이
머릿속에서 쉽게 연상되므로 주로 형상에 따른 분류로 설명하고자 한다. 철강 제품의 형상에 따른 분류는 크게
봉형(棒形) 강류, 판재(板材)류, 강관(鋼管)류 그리고 주강(鑄鋼)품과 단강(鍛鋼)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철강은 제조
과정이 복잡하지만 크게 ‘원료-제선-제강-조괴-압연’의 과정으로 나뉜다. 철광석에 코크스 등을 넣고 용광로에서 고온으로 가열하면 선철이 나온다. 이
과정을 제선(製銑), iron making 이라고 한다. 선철은 그 자체로는 사용할 수 없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제강 과정을 거치면서 강으로서의 성능을 갖게 된다. 용융된 강을 꺼내 주형에 넣어 강괴ingot를 만드는 과정을 조괴라고 한다. 이 강괴를 3단롤로 보내 형태를 만들면 각종 형강이 되고, 가열해 열간압연기熱間壓延機(가열된 원재를 압연하여 일정한 규격의 형태와 두께로
만드는 기계)에 넣으면 철근이나 다른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철강 제품은
수요 산업별로 거래 형태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자동차, 조선 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판재류를 많이 사용한다. 부품 등으로 가공하는 물량이 있어도 철강업체와 고객사가 직접 거래하고
있다. 반면 국내 출하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용 수요는 철강사의 직계 대리점 등 유통점을 통하여
거래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철강의
산업 구조
세계철강협회World Steel Association의 통계에 의하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세계 철강 수요의 47%가 건설산업에 사용되었다. 2017년 전 세계 조강생산량은 16.9억t으로 중량 기준으로 철은 콘크리트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 소비되는 건축재료다. 철은 구조재부터 외장재까지 건축뿐 아니라 조선, 기계, 자동차 등 거의 모든 산업의 바탕을 이룬다. 제품 개발의 주기와 제품화에 다다르는 기간만 최소 30~50년에 이를뿐더라 연간 국내 철강 관련 산업만 수십조 원 규모다. 이렇듯 철강철강산업은 다양한 수요산업에 공급하는 국가기간산업인 동시에 높은 설비투자가 필요한 자본집약적 장치산업이기도 하다.
철강의
유통
2017년 연간 기준 국내 철강재 출하 물량은 약 5,200만t으로 이 중 유통으로 거래되는 물량은
1,830만t이다. 가장 대표적인 건설용 강재인 철근의
동기간 출하 물량은 1,140만t이며 이 중 유통·대리점을 통한 출하 비중이 55.8%, 나머지
44.1%는 건설업계에 직거래로 공급되고 있다. 최근 중국 철강산업의 성장으로 국내에 중국산
철근을 비롯한 다양한 건설용 강재가 수입되고 있다. 그러나 원산지 구분과 품질 보증에 대한 장치가 없어 건축물의
안정성 문제가 이슈화되고 저급의 중국산 건설용 강재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는 KS 규격 등을 활용해 국산 제품을 수입 제품으로부터 방어함과 동시에 철강 제품의 고기능화, 고성능화를 통해 건축 시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으로 국내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는 중이다.
철강에
주목하는 이유
수요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건축용 소재로서 철강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경제성이다. 철의 원료가 되는 철광석은 자원이
풍부하고 비교적 쉽게 제품화할 수 있어 다른 건축재료보다 경제적이다. 대량생산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풍부한 철광석 부존량으로 현대의 철강제품은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된다. 또한 높은 강도와 내구성 그리고
재활용률도 무시할 수 없다. 철은 합금원소와 열처리 등으로 건축물에서 필요한 강도를 구현할 수 있다. 또한 건축물을 해체할 때에도 자성을 띠어 알루미늄 등 다른 금속 대비 회수율이 높고 재활용이 쉬워 친환경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건축재료로서
철
건축재료로서
철강재의 주요 용도는 구조재와 외장재다. 특히 철강 외장재는 공장에서 미리 제작하여 현장에서 모듈로 조립하는
게 가능해 넓은 면적을 효율적으로 시공할 수 있다. 최근 다양한 도금, 도장
기술이 개발되며 철강의 단점을 극복한 외장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동국제강의 컬러강판 브랜드인 럭스틸은 2011년 론칭한 이후 지난해 75만t을
생산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철은 다양한 형태로 가공해야 비로소 건축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원판은 1,220×2,440mm의 크기인데
이를 펀칭해 뚫고 자르고 구부린다. 최근엔 기술과 기계가 발달하면서 레이저커팅과 펀칭프레스, 자동절삭기계를 사용한다. 파이프와 같은 강관류와 강선은 다양한 두께와 길이가
있다. 이를 튜브레일 기계로 자르고 뚫고 용접해 연결한다.
건축용 외장재는 내식성을 높이기
위해 도금 제품이 주로 사용되는데 아연이나 알루미늄 같이 하나의 1원계를 도금한 도금재와 아연-알루미늄 혹은 아연- 마그네슘 합금의 2원계, 그리고 아연- 알루미늄-마그네슘의 3원계 도금재 등이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최근 출시되는 3원계 도금 제품의 경우 기존 아연 1원계 제품과 비교해 표면 내식성이 5~10배 정도 우수하다. 이런 이유로 건축 외장재로서 축사, 태양열 발전 외부 지지재, 물탱크, 가드레일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사용 영역 또한 확대되고 있다.
콘크리트에
철근을 더하는 이유?
또 다른 철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열팽창 특성이다. 열팽창계수가 10~12ppm/°C인
철강제품의 경우 1°C 증가할 때마다 1m당 10~12μm씩 팽창한다. 현대건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도 철강과
콘크리트의 열팽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철근과 콘크리트는 열팽창계수가 거의 같기 때문에 대기 온도 변화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재료 간의 응력은 무시할 수 있다. 만약 두 재료의 열팽창 성질이 달랐다면 여름철이나
겨울철이 지난 후에 균열이 심각하게 일어날 수가 있으나 비슷한 열팽창계수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형상과 치수에 크게 제약받지 않고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철의
매력을 탐구하는 이들
건축에서 사용하는
철재는 주로 구조재나 외장재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건축가 조병수는 진성재료로서의 철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며 끊임없는 실험을 이어왔다. 철재를 기둥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인장력이 강한 장점을 이용해 와이어로
대형 공간을 구현하기도 한다. 익스팬디드 메탈이라고도 불리는 확장금속망을 전체 외장재로 사용해 현대자동차
천안 글로벌 러닝센터를 설계하기도 했다. 한편 건축가 국형걸은 철강재를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으로 다양하게 실험한다. 골형 타공철판을 이용한 도봉구청사 증축 프로젝트나, 파빌리온 솔라파인, 포스코와 함께 스마트태양광모듈을 개발하고 이를 건축에 적용한 포항공과대학교 프로젝트까지,
철의 날카로움과 정확함으로 건축의 경계에 틈을 내고 있다. 이 밖에도 철은 건축뿐 아니라 가구
같은 생활용품, 예술 작품의 소재로도 많이 쓰인다. 모두 철이 가진
단단함과 강성 그리고 우수한 가공성 때문이다. 조각가 김병호는 철이 가진 특성을 활용해 용접이나 볼트 대신
정밀하게 가공해 끼워 맞추는 방식을 택한다. 그 과정에서 디자인뿐 아니라 가공과 도장 등 모든 공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철로 가구를 만드는 레어로우는 단순히 철을 임가공 하는 차원을 넘어서 시스템 가구를 만드는 등
전문 디자인 회사를 지향한다. 철재의 가장 큰 장점인 모듈화와 얇고 강한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기술과
투박함, 역설적인 공존
최근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램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디자인이 가능해져 디자이너가 원하는 대로 구현이 가능하게 됐다. 편하게
접었다 펼 수 있고 가공이 정확해 원하는 형태로 만들기 쉽다. 종이와 유사한 형태로 철을 가공하기도 한다. 철의 가능성을 극대화해 종이와 같이 가볍게 제작하거나 고도의 특수 프린팅 기술을 통해 마치 섬유처럼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은 여전히 무겁고 녹슬고 단단하다.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특성이다. 그러나 순수하다. 철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용법은 모두
다르지만 진정성의 철을 통해 많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점은 모두 같다.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태도는 바로
진정성authenticity이 아닐까.
* 원문 및 작성 : 감매거진 (garm.8apple.kr)